awful tutorial

게시자: wonki

어제 오스틴과 튜토리얼이 있었다. 튜토리얼이 있는 날은 왜 꼭 자꾸 말썽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물론 튜토리얼이 있는 날만 그러는 건 아니지만.

우선, 어제 너무 바빴다. 수요일은 제일 바쁜날이다. 오전 3시간동안 Siân의 수업을 초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추상적이고 복잡한 내용과 정신없이 바뀌는 주제때문에도 어렵지만 그녀는 특유의 고상한척 때문에 말하는 중간중간 혼잣말하듯이 배빨리 지나가는 말이 많아서 말을 알아듣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이후 세미나가 2개 연달아 있고, 저녁에는 방배동 키드와 주간미팅이 있다. 집에 도착하니 10시. 저녁도 못먹어 지칠대로 지쳐 맛있는거라도 먹고 회복하자며 지난번에 대성공한 레서피대로 떡국을 시전, 참담하게 실패한 떡국을 먹고 할일을 채 못한채 3시가 한참 넘어 억지로 잠을 청했다.

문제는 아침마다 공사소음때문에 집안에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도저히 몸을 못움직이겠었으나 어김없이 시작된 미친소음덕에 1시간동안 시달리다 겨우 일어나 밥을 챙겨먹고 학교로 나왔다. 매일 1~2시간을 시달리는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투토리얼 준비를 못한 급한 마음에 서둘러 학교로 향하는데 Canada Water에서 갈아타고 나서 갑자기 낯선 풍경이 나온다. Clapham Junction행으로 잘못 탄 것이다. 하필 이때에. 짜증이 나지만 다행히 버스타고 갈 수 있는 방향이고 수업에 늦은게 아니니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그러나 이내 몇정거장 뒤 버스 차고지 근처 정류장에서 답답하게 너무나 느긋하게 교대를 하는 모습에 내가 열차를 제대로 탔어야 되는데 하는 후회. 겨우 학교에 도착해서 도서관에 가니 마침 동하씨가 있었고 며칠전 Joo를 도와준 이벤트에 대해서 묻길래 얘기하다가 옆에 자리도 여유있어 앉았다가 한시간여를 마가렛 댓처와 리퍼트 대사 난장판, 기독교, 이슬람, 샤를리 앱도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장황하고 횡설수설로 설명하게 되었다. 맘잡고 다시 리서치를 하는데 젠장 VLE도 로그인 안되 와이파이도 끊기고 너무 답답해서 IT센터에서 줄서서 겨우 차례가 되서 얘기하니 로그인 실패로 락이 걸려있단다. 무슨 내가 로그인을 한적이 없는데 황당했다. 물어보니 3번 실패하면 락이 걸리고 그러면 무조건 IT센터와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치도 저멀리 구석으로 이전하고 말도 안되는 소리하는게 너무 답답했다. 그럼 야간에는 어쩌라고?

아무튼 별로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튜토리얼 들어갔는데, 이게 웬일. 물론 준비가 덜 되어 긴장한 탓도 있지만 입술이 타고 영어가 거의 나오질 않았다. Completely gone nut. 오스틴이 몇번 이해가 안되서 재차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물론 그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전체 수업시간을 통틀어 이렇게 말이 안나온 적이 없었다. 마치 초보자가 손짓발짓 해가며 설명하는 것처럼. 부끄럽고 화끈거릴 정도로. 지난번에 서로 동의한데는 Video production에 대한 내 아이디어가 별로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는데, 그럴필요도 없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차별화를 주기 위해 내가 설명한 speciality의 개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난항에 빠져있다가, 결국 내가 만든 포트폴리오를 보여줬는데. 그는 매우 프로페셔널해보인다며 (물론 당연하지 돈받고 한 일인데) 끝내 웃으며 아주 괜찮다고 했다. “You should have shown this to me from the beginning! oh man, why you didn’t it?” 더불어 션이 다가와 몇마디 거들었다. “No, Wonki should say that why you didn’t ask me to show your work from the beginning.” 션은 알고있었지만 오스틴은 몰랐나보다. (물론 그렇겠지만 나도 거기까진 생각 못했다.) 제네럴한 접근보다는 튜토리얼은 개인적이고 custermised된 접근이 필요한 건데. 애초에 왜 안보여줬는지 나도 살짝 아쉽고. 처음으로 션이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도 그럴게 코스 시작때 션과의 튜토리얼에서 매우 걱정된다며 거의 싸우다시피 하여 나도 션을 싫어하면서 과연 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것인가 걱정되기도 하고 예상을 할 수 없었다. 사실 ‘두고봐라, 나중엔 내가 잘해서 션을 웃게 만들겠다.’라는 (너무나 바른학생다운)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으나 션이 아시안 학생을 약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단 얘기를 줄리대표한테 듣고서는 솔직히 기대를 안했다. ‘어차피 코스도 짧고 금방 지나가는건데 여기서 엄한(션을 내쪽으로 되돌리는 일)데 힘 쏟느니 나한테 실질적 득이 되는 것을 취하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기대치도 않게 그 모습을 오늘 본 것이다.

물론 오스틴이 내 작업물을 아주 깊이있게 본것은 아니었고 그게 그렇게 깊이있는 것도 아니었긴 하다. 다만 그가 나에대해 우려했던 부분이 전혀 우려할 건 아니라는 생각과 말은 못해도 기본적으로 하던게 있으니 “not from scratch, you already have a body.” 내가 알아서 잘 할거라는 안도가 스스로 웃게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한다. 더불어 션의 반응은 살짝 그리고 분명히 나한테 칭찬과 복돋움의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별로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본 것은 나의 태도나 모습이 달라진(달라진게 아니라 그냥 좀 더 발전한)게 아니었을까. 사실 처음에는 ‘그렇게 걱정되면 애초에 왜 나를 뽑았느냐.’라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이미 답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러지 못했다. 어차피 대학도 많이 가지 않는 영국인들인데, 학사도 아닌 석사코스는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그중에서도 EU밖에서 오는 학생들은 EU출신에 비해 학비가 2배가량 비싸다. 유학생 수가 줄고있는 영국에서 재정의 대부분을 의지할 유학생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물론 이렇게 대답할 수는 없겠지만.) 따라서 나는 물어보는 것 자체가 의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지원할때 이미 포트폴리오를 본 션의 경우는 이 부분을 고려해서 오퍼를 준게 아닌가 싶다. 백마디 말보다 직접 보여주는게 낫다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그만큼 의사소통의 서툴고 불안하다는 뜻이 된다.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들었으므로 힘들지만 나름 기뻤다. 사실상 퀄리티가 가장 낮았던 튜토리얼으나 피드백은 가장 좋게 받은, 마치 역대 못봤다 생각했는데 의외의 최고점이 나온 IELTS시험같달까. 다행이라는 안도와 더불어 앞으로가 걱정되는 그런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