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ing fantasy
나의 삶에서, 20대를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삶의 방식을 꼽으라면 아마도 환상 깨기(breaking fantasy)일 것이다.
10대에는 소설과 만화, 영화에 영향받아 마음껏 상상하고 환상을 품고 환타지를 만들었다면, 20대의 삶은 그야말로 현실에 부딪히기, 부딪혀서 환상을 깨기로 점철된 시절인 셈이다.
판타지는 약한 것이라고, 온실속의 화초같고 현실파악 못하는 철부지 어리석음이라고. 현실에서 살아남고 이루는 것이야 말로 진짜 성숙하고 어른다운 것, 우월한 것이라고. 이러한 믿음은 꽤 희망적이었던 10대와는 달리, 몸으로 부딪히며 현실의 벽을 깨달아가던 20대에 영상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자료를 모으고, 상상하고 시각적으로 구체화 시키는 작업들은 즐거웠다. 하지만 그 다음 그것을 현실화하는 작업은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부터 사람을 찾고 팀을 조직하고 없는 예산을 만들어내고 만든 예산을 줄이고, 장비를 빌리고, 도움을 요청하고, 사람한테 매달리고, 변수를 예상하고, 조정하고, 하나 해결하면 또 하나 생기는 문제를 계속 처리하고… 상상을 현실로 가져오기까지 의지할 데 없이 모든걸 혼자서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
‘현실화 한다는게 생각보다 힘든 일이구나.’ 프로듀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할수있는 사람이 얼마나 없느지 알게되었다. 상상의 힘을 믿던 소년은 어느새 현실의 벽의 높이를 재면서 현실의 힘이 상상의 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어른으로 변해있었다.
이 ‘매우 현실적인’ 어른은 어느덧 책을 거의 안읽고, 음악도 예전처럼 찾아듣지 않고, 영화도 힘에 겨워 거의 끊다시피 하며, 상상을 나약한 것으로 치부하는 콘텐트 크리에이터가 되어있었다.
이러한 데에는 상상력만 풍부한 허풍선이 같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은 원래 싫어하는 것을 보고 반대로 행동하려는 습성이 있다. 나 역시도 특히 심해서 흉내쟁이들이나 화려함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무척 경멸하였다. 예를들면 패션업계 사람들을 유난히 멀리한다거나…
하지만 그러는 와중 나는 지나치게 현실적이 되어버렸고, 안그래도 생각이 많던 나인데 현실적인 걱정들로부터 도무지 탈출할 수 없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걱정들과 무기력감은 나의 모티베이션을 빼앗았고, 어느새 내 머리속의 상상력을 완전히 죽여버렸다.
하지만 남들 보기야 어떻든, 결국 훌륭한 작품들은 이러한 판타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작가들은 이러한 판타지를 꾸준히 간직하고 마음속에 키우고 보호하고 그걸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나도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내 마음속의 환상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결국 현실의 매서운 바람에 꺼뜨리게 되었다. 과연 내가 이 불을 다시 지필 수 있을까?
아 원래 이 글은 이런 글이 아니었다. 어떻게 환상깨기를 시도했었는지, 왜 그게 중요하게 여겼고 그래서 기대를 덜하는 나의 성격까지 도달했는지를 서술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군 제대후인 25살 이후부터는 꾸준히 몸으로 직접 경험해보려고 했었다. 좋아헀던 음악을 직접 배워본다거나, 환상을 품었던 대만으로 여행을 직접 가본다거나, 외국에서 살아보기, 좋아하는 도시인 타이페이에 직접 살면서 중국어를 배워본다거나, 지금 영국에 공부하러 온 것, 환상을 가졌던 곳으로의 여행, 외국어로 논문을 쓰고, 학위를 따고, 일을 하는 것도 다 이러한 환상깨기의 연장선상이다.
“Been There, Done that.”
환상은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경험을 통해서 비로서 충족되거나 해소, 해갈 될 수 있다. 실현보다는 경험에 가까운 것으로, 시도하지 않고 오래 계속될수록 그 환상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환상은 현실보다 무척이나 과장되고 극도로 이상화된 경우가 많고, 현실은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나 멘탈이 약하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젊은 나는 이러한 환상이나 기대가 깨짐으로 인해 받는 충격과 상처가 무척이나 쓰라렸다. 만약에 내가 어찌해볼 수 있는 것이라면 위에 쓴것처럼 기꺼이 도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사람의 마음이라거나, 관계, 연애에 있어서는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는 기대를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 편이 나았다. 그래서인지 보통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서 첫눈에 빠진다 하여도 기대를 접고 시작했다. 그래야만 나중에 잘 안됐을 때 덜 실망하거나 상처를 덜 받는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노력을 안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번 자보려고 하는건 노력으로 된다 쳐도 사람을 좋아해서 사귀는건 노력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노력으로 된다면 그것은 억지이고 속이는 것이고 결국 오래갈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호감을 위해 노력을 하되, 상대를 배려하고, 절대로 강요하지 않는 것. 이러한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덜 적극적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적극이 강압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때문에 나는 관계의 진척에 있어서 하나씩 쌓아갈 시간이 필요한데, 반대로 내가 적극의 대상이 될 경우, 그러한 빠른 접근은 상당히 기피하게 된다. 감정이 전혀 없는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아주 확 빠져드는 경우도 아닌담에야 (물론 이경우는 꽤 위험하긴 하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질 시간이 필요한데, 아무튼! 이러한 경험들로 인해 나는 기대를 안하게 되었고, 이제는 상당한 현실적인 감각이 있다고 자부한다. 문제는 이때문에 연애를 못하고 있다는 것.
연애를 못한다고 투덜대려는게 아니라. 그냥 두렵다. 애초에 기대를 안하고 점점 허무함과 무기력감만 심해져가는 나의 삶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