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alright, mate?

분주한 게으름(Active Laziness)

오늘 아침에 침대에서 읽은 글.

항상 “바쁘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항상 “바쁘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The Cult of Busy)”

“점심식사를 함께한 그 친구를 보면서 나는 불교승 소걀 린포체가 설파한 개념인 ‘분주한 게으름’(Active Laziness)을 떠올렸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쌓아두고는 책임감에 짓눌리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린포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건 사실 ‘무책임감’이다.

My friend at lunch reminded me of what the Buddhist monk Sogyal Rinpoche calls “active laziness” – the filling of our lives with unessential tasks so we feel full of responsibilities or, as he calls them, “irresponsibilites.””

소걀 린포체 같은 불교승에게 ‘바쁨’이란 곧 ‘게으름’이다. 시간을 어떻게 쓰고 어떤 버릇을 고칠지 전혀 고민하지 않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하루 중 깨어있는 시간에 본인이 어느 정도의 일을 해낼지 ‘예측’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만큼 살아온 것이다. 자신의 업무처리 속도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업무를 분산할지에 관해 투명해지고, 핵심이 아닌 것들에 “아니요”라고 말할 만큼 자신감을 갖춘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은 아마 매일 합리적인 수준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을 통해 당신은 편안하고 전략적이며, 동시에 꼼꼼해진 기분을 느낄 것이다. 허둥지둥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이다.

To Buddhists like Sogyal Rinpoche, busy sounds lazy – not thinking mindfully about how to spend time and which habits to break. If you’re reading this article, you’ve lived enough days to understand what you can expect to accomplish in your waking hours. What if you were honest about your work speed, how effectively you delegate and had the confidence to say no to non-essential activities? You could set reasonable goals for each day, then head directly towards them. With this approach, you would feel relaxed, strategic and methodical — the opposite of rushed.

나도 곧잘 바쁘다고 말한다. 항상 핑계는 그거다. 할일이 너무 많아서 바쁘고 시간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내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 일 수도 있다. 압박감. 중압감. 책입감. 그리고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내 삶을 제어하지 못한다. 항상 머릿속에 생각한 일을 미처 못끝내고 내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눕는다. 수많은 미련때문에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 불안함을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보낸다.

나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느즈막히 일어나야 몸이 풀리는걸 느낀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뭔가를 먹기 힘들다. 오전에 신호가 와서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면 그제서야 허기가 심하게 진다. 기상 후에 장이 움직일때까지 시간이 걸리는가 보다. 이때는 꽤 많이 먹는다. 다만 이런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예를 들어 출근중, 이것과는 상관없이 회사에 도착할때 쯤에 허기가 지기는 하는데 이게 상당히 피곤하다. 내 생리적 리듬에 맞춰 살려면 아무래도 프리랜서로 이 패턴을 유지해야 건강하려나 보다.

반면 밤은 잘 새거나 늦게자는데, 사실 아침에 출근하는 것 아니면 혼자있는 밤 시간이 나에게는 무척 유용하다. 온세상이 고요하고 혼자 여유있게 사고할 수 있어서이다. 물론 모든걸 작업에 쏟는 것은 아니지만 무얼하든 꽤나 생산적인 방식으로 고도의 집중을 할수있는데, 여기저기서 오는 연락들과 요청들에 정신이 완전히 아작나는 것에 비하면 배우 만족스러운 시간이다. 다만 문제는 다음날 아침에 무척 피곤해서 그 다음날 오전을 제대로 보내기가 힘들다는 것. 아무래도 이 비중을 조절해서 계획을 세워야겠다.

현재는 학교를 다니고 있으므로 조금 조절이 가능한데. 간단하게는 다음날 수업이 없으면 늦게까지 집중해서 시간을 쓰고 다음날 11시경 일어나는 것으로 하고, (늦게자더라도 이시간에는 거의 자동으로 일어난다. 그것도 꽤 가뿐하게.) 다음날 수업이 있으면 늦어도 12시에는 침대에 올라가자. 그럴려면 저녁식사 후 – 잠자기 전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 피곤해도 노는게 아니라 다음날 계획을 잘 떠올리고 무얼해야 할지 정해야 한다. 수업에 필요한 리딩을 하거나 해야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현재 문제는 아침 8시만 되면 요란스럽게, 아니 미친듯이 공사소음이 머리위에서 울려퍼진다. 해머와 드릴등으로 깨부시고 난리도 아니다. 현재 플랏이 지붕교체를 포함한 큰 공사중인데, 내 방이 이 플랏빌딩 맨 꼭대기 층이라 바로 머리 위에서 지옥이 펼쳐진다. 잠결에는 내 머리를 후려치는 느낌이다. 그래서 무조건 학교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곤 했는데, 아무래도 여러가지 문제 때문에 아무래도 집에 있는 편이 좋긴 하다. 그래도 도서관은 남 눈치에 딴짓 안하고 열심히 집중할 수 있어서 좋기도 하다. 특히 책상과 의자가 너무 좋아서. 집에있는 책걸상을 바꾸고 싶은데 공간이 마땅치 않다. 하지만 조만간 곧 도서관에서 살게 되겠지.

앞으론 명상을 좀 하자. 바쁨을 느끼기 전에 내 시간을 잘 컨트롤하자. 중요하지 않은 일들은 아예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중요한 것들은 ‘나중에 제대로 해야지’ 하지말고 지금 당장 시작하자. 좋은 아이디어는 묵혀두는 것이 아니다.

Gazes at Disabled or Lessabled People

며칠전 Tooting Broadway에 뷰잉을 해주러 갔다. 그런데 그날 예약한 4명의 뷰어중 첫번째는 Let사인만 보고 주차공간도 없다며 연락도 없이 그냥 돌아갔고, 두번째는 연락이 없었고 겨우 반인 2명만 들렀다. 사실상 첫번째 뷰어인 Daurisz는 행색이 좀 초라하지만 깔끔하고 키가 작은 폴리시 남자였는데 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했다고 했다. (행색이 초라하다는 말은 주관적 선입관이 들어간 표현 같은데 다른 표현은 없을려나..) 전반적으로 방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는데 직업을 구했다고 했고, 인텔리전트해보여서 이 사람이 계약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던 중에 다음 뷰어가 왔고 그를 내보내고 새 뷰어를 맞았다.

새 뷰어는 두명이 왔는데, Martin이라는 불가리안 남자와 또 다른 한명이 왔다. Martin은 deaf로 brother-in-law라고 같이 온남자가 소개했다. 말은 잘 못하지만 듣는건 문제 없다고 햇다. Martin은 완전히 소리를 못내는 것은 아니라 (흥미롭게도) 수화를 사용하지 않고 그 남자에게 얘기하면, 그 남자가 영어로 통역을 해주었고 내가 말하면 그가 불가리아어로 Martin에게 통역을 해줬따. 신기하게도 조금 지나니 Martin이 말하는 몇몇 영어단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고, 가끔 영어로 전달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Martin은 영어가 좀 부족한 듯 했다.

아무래도 내가 게이인지라 여자의 외모는 전혀 신경쓰지 않지만 남자들 외모를 먼저 보게된다. (물론 데이트도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외모를 가지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이건 그냥 습관이다.) Martin은 나홀로 집에 나오는 두명의 악당중 동생을 연상시키는 외모로, 평범했지만 머리가 부스스 일어있는 모습이었고, 옷에 페인트가 묻은 작업복을 입어서인지 행색은 앞서 Daurisz보다 더 남루해보였다. 그에 비해 같이 온 남자는 둘다 비슷한 작업복을 입었지만 스킨헤드에 꽤 잘생긴 미남인데다 영어까지 잘 하니 둘이 상대적으로 매우 비교되어졌다. 그도 역시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고 하고싶으니 연락을 달라고 했다. (물론 난 이말들을 절대 믿지 않는다.) 다만 내 입장에서도 deaf는 처음이라 조금 우려되기도 하고 마침 그들도 현금이 없다고 했으므로 먼저 집에가서 연락을 주기로 했다.

그들을 보내고나서 나는 대체 무엇이 우려되었는지 자문해보았다. 일차적으로 다른 테넌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걱정되었다. 먼저 Hugh와 통화해서 상황설명을 하고 조심히 그가 deaf인데 받아도 괜찮을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장애를 이유로 차별하는것은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내가 차별주의자로 보이지는 않을까 살짝 염려스러워하며 조심스럽게 돌려 돌려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만약 미리 얘기하거나 물어보지 않고 덜컥 그사람을 받아들였다가 행여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만약 나를 비난하거나 책임을 물으면 거기에 내가 차별주의자라고 맞설 대책도 없으므로 그저 확실히 하고 넘어가자는 생각으로 얘기를 꺼낸 것이었다. (이 일에서는 내가 참 권한도 없고 중간에 껴있는 불쌍한 처지다.) 그런데 물론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상관없어. 그 사람이 장애가 있든,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심지어 트랜스젠더든 다 받아도 돼.”라는 것이었다.

그래, 이 방배동키드의 말은 참 올바른 것이다. 차별받지 않는 세상. 마치 내가 차별을 하려고 했던 사람처럼 조금 부끄러워지게 만드는 이 자신감 넘치는 말투.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사람은 ‘렌트만 제때 문제없이 내면.’이란 조건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것이다. 본인이 같이 사는것도 아니고 직접 관리하는 것도 아니니 사실상 누가 들어오든 상관할게 못된다. 그러니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상황에서 이사람이 다르게 돌변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고 부딪혀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물론 문자로 하면 되므로 나는 문제될게 없었다. 조금 힘들지는 몰라도 사실상 그런것은 기본적인 이해범주에 있는게 맞다. 상대가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어느 누구나, 비장애인이라 해도 그정도 배려와 이해는 사회적으로 해줄수 있는 범위로 인식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다만 그 집에 오래 살았던 깐깐한 Povel부부가 과연 좋아할 것인가. – Ashley는 아마 별로 신경안쓸 듯 하다 – 라는 질문 이전에 그들을 고려하지 않고 반차별주의적 입장에서 내멋대로 결정한다면 (그게 가능할 경우에) 그건 어떻게 보면 먼저 살던 이들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

사실 내 머릿속은 하나를 생각하면 수십개가 동시다발적으로 마구 꼬리를 물며 떠오르는 지라 정리도 안되고 생각하는게 무척 힘들다. (가끔은 이게 병이 아닌가 싶다.) 특히 그 상황이 그랬다.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것이 옳은가. 차별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반대로 다른이들을 고려하지 않게 되는 상황은 또 문제가 되는게 아닌가. (결론적으로는 문제가 되는게 아니다. 그건 너네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야.라고 하면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나. 운이든 랜덤이든 기본적으로 어떤 장애인과도 어울릴 수 있는 자세는 모두에게 요구되어진다. 만약 그 결과로 그들이 나를 탓하거나 그를 불편하게 여기는 순간 그들은 차별하는 셈이 된다. -물론 인간의 마음이란게 깔끔하게 아무것도 다른점/어려운점을 못느끼지는 않는다.) 머릿속으로는 차별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현실에 부딪히면 어떤 영향들이 있을것인가에 대해 추측/혹은 계산을 안할 수가 없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서울의 배울만큼 배운 동네의 주민들이 장애인 시설등의 설립을 결사반대하는 모습이 겹쳐졌다. 과연 어린아이처럼 차이 자체를 몰라 똑같이 대하는 순수함을 추구함이 옳은 것인가? 딱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발생한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미리 걱정하는 것인가. (물론 방배동키드가 나한테 그랬었다. 너는 자꾸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서 상황을 복잡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맞는 말이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직접 사건의 발생 이전에 수많은 상황을 머릿속으로 자동으로 그린다. 하고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그냥 떠오른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막상 닥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잠시 꺼두고 생각을 말아야 쓸데없는 에너지를 안쓰고 다른데 집중할 수 있다고. 물론이다. 나도 무척이나 그러고 싶다. 개인적으로 방배동키드는 인간적인 면으로 비호감에 가깝지만,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고 그래서 거기서 (배울점 이라기 보단) 사고를 전환시킬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예전엔 Hugh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아서 못했다. 언젠간 할 수 있으려나?)

결과적으로 둘 다 계약하지 않았다. 괜한 고민이나 마찬가지인 셈이 되었다. Martin은 하고는 싶어했으나 괜찮다던 이사날짜를 갑자기 엉뚱하게 자기 가족이랑 한두달 더 지내야 될지 모른다며 그게 가능하냐고 물어봤다. 룰은 룰인지라 싱글룸에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런 배려는 해줄수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도 별로 들어오고싶지 않아 억지부린게 아닌가 싶다. 하여간 이사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다들 자기입장만 생각하기때문에 그들을 배려해 주는건 일방적인 소모일 뿐이다. 적어도 홀딩피를 내기 전까진 말이다.

나는 단지 여러사람을 위해서 염려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바로 차별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차별에 대해 올바른 마음가짐/인식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진지하고 깊은 사고를 필요료 하는 것 같다. 특히나 게이로서 차별이슈는 항상 민감했는데 다른 범주의 차별을 접하니 나도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싶다. 반대로 사회가 LGBT를 접할때의 반응, 나의 부모님이 내 정체성을 대하는 반응, 나와 친구들이 poz를 만났을 때의 반응 등은 여러번의 실제적인 학습없이는 통제가 불가능한 것이다. 공부하자. 그리고 경험하자.